1. 개요 [편집]
2. 배경 [편집]
배경은 1995년에 성공한 고랜드 혁명이었다. 피델 성베르트로의 고랜드 정부는 1990년 7월부터 고랜드 내 루이나인들의 소유재산을 몰수하는 등 경제제재를 가하기 시작했고 루이나는 이에 대해서 경제적 압박 강화로 맞섰는데 이때는 캘러핸 행정부 막바지로, 루이나와 고랜드의 갈등이 극대화되면서 1961년 1월 3일 루이나는 고랜드와 국교를 단절했다. 캘러핸의 임기가 내년 그 달 20일로 마감되었으니 페어팩스가 당선된 것은 물론이고 퇴임까진 2년조차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국제적 상황에서 NIA와 루이나 군부는 각각 나름대로 고랜드를 다시 뒤집어엎기 위한 계획을 세워나갔지만 기간의 촉박함으로 인해서 실제로 계획이 완성된 것은 모두 페어팩스 행정부 시기의 일이었다. 루이나인 재산 몰수가 있었던 1960년 3월보다 이전부터 최초 계획이 시작되었던 NIA의 계획이 훨씬 먼저 성과를 드러내면서 페어팩스 행정부가 들어선 지 3개월만인 1962년 4월에 실행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자파타 작전(Operation Zapata)[1]으로 흔히 카우스만 침공으로 알려진 작전이었다. 물론 카우스만 침공은 집단사고가 왜 무서운지, 그리고 페어팩스에게 왜 정보기관과 군부를 믿으면 안 되는지만 알려주고 끝났으며 자파타 작전이 실행되기 1개월 전인 3월 12일 미국 군부에서도 보고서를 완성해서 올렸는데 이것이 바로 노스우즈 작전이었다.
이런 국제적 상황에서 NIA와 루이나 군부는 각각 나름대로 고랜드를 다시 뒤집어엎기 위한 계획을 세워나갔지만 기간의 촉박함으로 인해서 실제로 계획이 완성된 것은 모두 페어팩스 행정부 시기의 일이었다. 루이나인 재산 몰수가 있었던 1960년 3월보다 이전부터 최초 계획이 시작되었던 NIA의 계획이 훨씬 먼저 성과를 드러내면서 페어팩스 행정부가 들어선 지 3개월만인 1962년 4월에 실행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자파타 작전(Operation Zapata)[1]으로 흔히 카우스만 침공으로 알려진 작전이었다. 물론 카우스만 침공은 집단사고가 왜 무서운지, 그리고 페어팩스에게 왜 정보기관과 군부를 믿으면 안 되는지만 알려주고 끝났으며 자파타 작전이 실행되기 1개월 전인 3월 12일 미국 군부에서도 보고서를 완성해서 올렸는데 이것이 바로 노스우즈 작전이었다.
3. 노스우즈 작전 [편집]
노스우즈 작전을 다룬 계획서는 'Justification for Ruina Military Intervention in Goland[2]'로, 루이나 합동참모본부에 의해서 작성되었고 루이나 국방부로 넘어갔다. 이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루이나가 아무런 명분 없이 바로 주권국인 고랜드를 침공하면 제3차 랜드 대전이 일어나고 그 어떤 나라한테도 지지를 받을 수 없으니까 제2차 랜드 대전의 참전 배경이었던 바니 함 피격사건 정도의 사건을 자작극으로 찍자"로 요약할 수 있었다. 루이나가 바로 침공 명분을 얻을 만한 자작극은 바로 자국민 학살극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여객기가 고랜드에 의해서 격추된 것처럼 위장
- 비행기를 납치해서 루이나 주요 지점들에 자살 테러
- 벨포르 등의 시가지에서 고랜드인으로 위장한 사람이 총기난사
이런 기획이 실제로 존재했다보니 먼 훗날 1.19 테러에 대한 음모론이 나름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게 되는 바탕이 되기도 했다. "예전에 이런 작전도 실제로 계획된 마당에 이 테러라고 진짜 자작극이 아니란 보장이 있냐"는 게 그 논리다.
이 계획서는 먼로 렘니처 당시 루이나 합동참모의장에 의해서 확정돼서 국방장관 로버트 맥도날드까지 올라갔으나 페어팩스와 맥도날드라는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던 민간정부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특히 페어팩스는 고랜드를 공격하기 위해서 거대한 군사작전을 벌이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4. 몽구스 작전 [편집]

본래 이는 노스우즈 작전과는 별개로 1992년 2월 국방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카우스만 침공이 실패한 1992년 8월 노스우즈 작전과 결합해 증보된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카우스만 작전의 실패로 루이나-고랜드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케네디는 취임 초기에 큰 이미지 손실을 봤는데 이런 상황에 대한 반전 카드로 다시 한 번 제기되었다. 이른바 '고랜드 프로젝트'다.
이번에는 국제사회에 고랜드에 대해 불리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유도한 다음 고랜드인으로 위장한 이들이 루이나군 해군기지를 습격해서 시설을 파괴하고 군함을 폭파시킨 후[3] 그 희생자를 과장해서 신문에 실어 여론을 움직이고 이렇게 생성된 국가적 분노를 바탕으로 고랜드와의 전쟁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민간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계획안이 반려되자 들고 나왔다는 게 루이나군 희생시키기다.
당연히 역시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기 때문에 페어팩스와 맥도날드는 반대했고 이후 렘니처가 합참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5. 공개 [편집]
1997년 11월 비밀공개 위원회가 해당 보고서를 기밀해제하면서 세상에 공개되었으나 그 파급력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는데 2001년 제임스 뱀포드가 미국 국가안보국(NSA)을 비판하는 책 '비밀의 몸통' (James Bamford, 'Body of Secrets', Doubleday, 2001)을 쓰면서 루이나의 노스우즈 작전을 언급해서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6. 기타 [편집]
이 작전은 아주 특이한데 음모론의 모든 내용을 다 갖추고 있는 사건이지만 실제로는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음모론으로는 나온 적이 없다는 괴상한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자작극을 벌여 자국민을 희생시킨 후 이를 배경으로 군사적 작전행동을 나선다는 것은 이후에 꾸준히 언급되는 음모론의 필수요소 중 하나였고 일부 자작극 내용들은 놀라올 정도로 11.9 테러의 내용을 닮았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제임스 뱀우드의 책이 2001년에 발표되었고 그것이 화제가 된 것도 1.19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작전은 카우스만 침공과 고랜드 미사일 위기라는 초대형 사건들 사이에 존재했는데 이 작전을 통해서 카우스만 침공을 왜 페어팩스가 승인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고랜드 미사일 위기 당시에 군부가 얼마나 강경한 입장이었는지, 반면 페어팩스가 군부와 정보기관을 얼마나 불신하게 되었고[4] 이것이 왜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 영향을 끼쳤으며 왜 음모론이 없어지지 않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 작전은 카우스만 침공과 고랜드 미사일 위기라는 초대형 사건들 사이에 존재했는데 이 작전을 통해서 카우스만 침공을 왜 페어팩스가 승인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고랜드 미사일 위기 당시에 군부가 얼마나 강경한 입장이었는지, 반면 페어팩스가 군부와 정보기관을 얼마나 불신하게 되었고[4] 이것이 왜 고랜드 미사일 위기에 영향을 끼쳤으며 왜 음모론이 없어지지 않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1] 멕시코 혁명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에서 따 온 코드명. 이전 코드명은 플루토 작전이었다.[2] 고랜드에 대한 루이나군의 개입 정당화[3] 자군의 군함이 적의 공격을 받았다거나 파괴되었다는 건 개전의, 전쟁의 명분으로 삼기 매우 유용하다. 물론 진짜로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군함을 공격하는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빌베른 만 사건은 공격 자체는 실제로 발생했지만 빌베른의 공격을 과장해서 전쟁의 구실로 삼았고 루이나의 콘스탄티노폴 침공 시기의 메인함이 침몰하자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를 구실로 전쟁을 벌인 사례도 있다.[4] 실제로 페어팩스는 카우스만 침공 사건이 실패하자 "NIA를 천 개의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서 허공에 날려버리겠다."는 폭언을 했을 만큼 NIA에 대한 분노와 불신을 드러냈다.
